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지 못한 것을 듣다.
예술을 넘어 창작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시이불견 청이불문(보기를 하되 보지 못하고 듣기를 하되 듣지 못한다)”을 극복해 나가는 노력과 시도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청(흘려듣다)을 넘어 견문(깊이 본다)의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곧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자질 중 하나인 것이다.
창의력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다”라는 말이 있다.
모두가 보는 것을 보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나 다 세상을 본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똑같은 세상을 바라지만 창의적인 어떤 사람은 그 안에서 새로운 창의적인 발견을 해낸다.
그래서 보는 힘이 필요하며 견문이 강조되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가로 막기도 한다. 현상과 사물을 볼 때 앞을 보는 것은 시청을 하는 것이고 뒤를 보는 것은 견문을 하는 것이다. 깊이는 본질을 깨닫게 해주고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다.
견문의 깊이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이 시이며 시인은 견문을 통해 지속적으로 작품을 내놓을 수 있다. 즉,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해준다. 그 안에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시만 견문이 필요한 것일까? 견문은 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필요하다. 우리가 항상 직면하는 모든 문제는 속은 숨긴 채 겉만 드리우며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단기적 대책이 아닌 이들의 본질 즉 내면을 바라보고 이를 본질적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결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전에 이야기했던 돈에 관한 문제 또한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견문을 하느냐에 따라 해결책이 여러 가지 나올 수 있으며 행복이라는 이상적 가치도 얼마나 견문을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사실 요즘 우리 사회는 행복이라는 개념을 너무 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개 20대를 넘어 대부분의 세대들이 지금 이야기하는 행복이란 자신이 하는 노동을 통해 가치와 개성을 되찾으며 만족감을 느끼고 풍요로운 물질적인 혜택을 누르기를 바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래 사회에서 유행하는 힐링적 혜택을 자신이 원하는 때 충분히 누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세상은 현재 20대를 두고 역사상 가장 영악한 세대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이러한 부분들은 과잉에 따른 낭비에 치우친 고민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자연은 나에게 ‘가난해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 ‘부자가 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자연은 나에게 ‘독립적으로 살라’고 간청 할 뿐이다.” -샹포르 『격언집』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자신이 노력하는 가운데 성취를 느끼고 이를 통해 조금씩 행복을 느끼기도 했고 주변에 있는 소소한 일상들을 통해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물질보다는 자연과 예술을 벗 삼아 삶의 풍요를 추구하는 데 만족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 이 사회는 물질만능주의로 인해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착각으로 세상을 병들게 하고 있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다. 돈이라는 쳇바퀴에 끌려가 평생을 살다가는 사람들이 사실 대부분이다. 평생 집만 넓히다 가는 것이다.
온 가족이 명품 옷을 입고 여행을 가서 싸우고 각자 귀가하거나 여행을 망쳐버리는 것보다 검소한 옷 차람에 가족이 모두 함께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여행을 갈 수 있다면 검소한 사람들이 명품 옷을 입은 사람보다 더 행복의 부자이다.
또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행복을 느끼기를 바란다면 이는 낭비이다. 찬란한 순간은 순간일 뿐이다. 지금 용돈 받아 여행을 다녀오며 행복을 느끼는 것도 결국 집으로 귀가하면 그 순간일 뿐이다.
행복 또한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창의적인 발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결과물들이 나올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견문을 하고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견문은 삶의 전체적인 부분에서 너무나도 중요하다.
이슬은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 눈망울
가지고 있다.
그 눈만 팔면
부자가 되는데
마음 착해서
안 판다.
-안도 대성국교 5년 손후남, 「이슬」
이 시를 보면 이슬이라는 사물을 견문한 시인의 노력과 재능이 선하게 보인다. 이 시를 쓴 시인은 불과 12살 어린아이다. 만일 어른이 똑같은 시간에 그 아이와 이슬을 동시에 바라보았다면 과연 위와 같은 시가 나왔을까? 하지만 어린아이는 이를 봤고 창의적인 시로 이를 표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대부분 어른은 자신이 이미 이슬에 대해 알고 있고 수없이 봐 온 풍경이라 별 생각 없이 그저 흘려보낼 것이다.
스스로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진정 알게 하는 길을 차버린 경우를 만든 셈이다. 우린 하루에도 이런 바보 같은 행동을 수 없이 반복한다. 창의적인 관점과 생각을 해내기 위해서는 이런 점을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견문을 하면 할수록 삶은 풍요로워지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부터 견문의 세계를 통해 창의적인 관점을 만나서 좀 더 일상의 풍요로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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